[조선비즈 인터뷰] 오필조 대한항공 노조위원장 “공정위가 운수권 줄이면 인력 구조조정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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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 심사 과정에서 운수권을 제한할 경우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오필조 대한항공 노조위원장은 지난 16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아시아나항공과의 조건부 결합 승인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이같이 주장했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두 대형항공사(FSC)의 합병으로 일부 노선에 독과점이 발생해 일정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항공업계에선 공정위가 기업 결합을 승인하는 대신 항공사가 특정 노선이나 시간대에 운항할 수 있는 권한인 운수권과 슬롯을 제한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령 하루 10번 중국에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 권리를 5번으로 줄이는 식이다.
대한항공 노조는 공정위의 조치로 운항 노선이 쪼그라들 경우 유휴인력이 대거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항공산업이 언제 정상화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휴인력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외국 항공사가 어부지리로 빈 노선에 취항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12일 제 24대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오 위원장은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을 내릴 경우 강력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오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항공업계가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상황을 알려달라.
“코로나19 사태로 반복된 강제 휴직에 직원들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다. 객실승무원의 경우 1년에 2달만 일하고 있을 정도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직원도 있고, 생계가 어려워 휴직 기간 중 부업에 나선 직원도 많다. 지방 대한항공 지점들은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몰라 사무실까지 반납했다. 노조에서는 이런 직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힘을 쏟고자 한다.”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도 앞두고 있다.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
“대한항공 직원들은 고용 불안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객실승무원부터 정비, 여객운송직까지 동종 업계인 아시아나항공 직원들과 업무가 겹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잦은 휴직을 겪으면서 이런 불안감이 더 커진 것 같다. 현재 대한항공 임직원 수는 1만8000명, 아시아나항공은 8700명이다. 항공업계에선 두 회사의 통합으로 업무가 중복되는 간접 인력이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조에서도 고용 안전성에 대한 직원들의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통합과 관련해 최근 공정위가 국토교통부와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노선의 시정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운수권이나 슬롯을 제한하려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노조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공정위의 이런 제한 조치가 고용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항공사는 수익성이 낮은 업종이다. 각 노선에 항공기를 계속 띄워야 직원들이 일을 할 수 있다. 일이 없는 직원은 유휴인력으로 분류된다. 사기업에선 유휴인력이 많아지면 구조조정이 뒤따른다.
문제는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이후 직원은 늘어나는데, 운수권과 슬롯 제한으로 일감을 축소하려 한다는 점이다. 인수 주체인 대한항공의 직원들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까 불안해하는 상황인데,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오죽하겠는가. 항공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이다. 정부에서 운수권 제한을 검토할 게 아니라 오히려 신규 노선을 발굴해 직원들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상황이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아시아나 통합 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대한항공은 창립 이래 51년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한 적이 없다. IMF,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항공기 80%가 비행하지 못하고 직원 70~80%도 휴직 중이다. 직원들 입장에선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 국토부, 공정위가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직원들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점도 우려스럽다. 당초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에 넘기면서 고용 유지를 요구했다.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이 체결한 투자계약서에도 이런 내용이 들어갔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5000억원의 위약금이 청구될 수 있다. 현 경영진이 경영에서 손을 뗀다는 조건도 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공정위나 국토부는 자칫 구조조정을 초래할 수 있는 운수권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여유가 있어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상 정부가 항공산업 재편을 위해 대한항공에 아시아나항공을 넘긴 뒤, 운수권과 슬롯 제한을 검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 수만명에게 돌아간다.”
-만약 공정위가 운수권 제한 등의 조건부 승인을 내릴 경우 어떻게 되나.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을 내린다면, 대한항공 입장에선 아시아나항공을 굳이 인수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인수를 포기해야 한다. 노조에서도 강경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운수권은 항공사가 운항 안전 요소, 수익성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 획득한 무형자산이다. 문제는 다른 항공사들에 남은 운수권이 재분배될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하면 유럽과 같은 장거리 노선에 취항할 수 있는 항공사가 없다는 점이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장거리 노선에 투입할 수 있는 대형 항공기가 거의 없다. 결국 빈자리는 외국 항공사들이 채우게 될 것이다. 이는 항공 주권을 외국에 넘기는 것과 같다.”
-두 항공사의 통합으로 독과점이 발생해 항공 운임이 오를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불가능하다. 항공 운임은 항공사가 마음대로 인상할 수 없다. 정부에서 운임에 상한선을 두고 있고, 국가기간산업이기 때문에 정부의 까다로운 규제를 받는다. 운임을 올릴 경우 전 세계 항공시장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다. 소비자들은 똑똑하다.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최저가 항공권을 찾는 시대다. 항공사에서 운임을 멋대로 올리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시장경제원리를 모르는 소리다.
특히 항공사 덩치가 커지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자연스레 수익성도 개선되고 항공 서비스 투자로 이어진다면 소비자에게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일각에선 아시아나항공이 사라진 뒤 경쟁사가 없어져 서비스가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데, 대한항공은 전 세계 외항사들과 경쟁한다.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
-노조에서는 항공산업 정상화 시점이 언제라고 보나.
“내년 이맘때즘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70% 가까이 회복할 것으로 본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는 2024년은 돼야 100% 회복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으로 1년 이상은 버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부에선 내년도 고용유지지원금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을 이렇게 방치하지 않는다. 항공산업 인력은 오랜 훈련과 투자로 탄생한다. 항공산업이 한번 경쟁력을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이유다. 공정위의 기업 결합 심사도 마찬가지다.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의 미래를 위해 현명한 판단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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