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알짜 슬롯 대부분 반납"…노조, 구조조정 여부 촉각

기사승인 2023-04-04 17: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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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대한항공 재벌만을 위한 노선권 반납 합병 규탄 기자회견' 모습.   사진=조은비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 승인 과정에서 무리하게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4일 아시아나항공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등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아나항공의 슬롯이 외국으로 넘어가 국가 경쟁력이 약화하고, 국민 불편 및 구조조정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슬롯은 특정 시간대에 활주로 등 항공편 운항에 필요한 공항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다. 

노조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가 갖고 있던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의 슬롯 7개를 영국 국적의 버진애틀랜틱 항공사에 넘겼고, 중국 노선 슬롯 일부도 반납한다"고 알려졌다면서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했던 알짜배기 장거리 노선 대부분을 반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대한항공과 버진애틀랜틱은 지난 달 말부터 인천~런던 노선 코드셰어(공동운항)를 시작했다. 대한항공이 운항하는 항공기에 버진애틀랜틱 편명을 부여해 항공편을 판매하는 것이다. 하나의 노선을 두 항공사가 나눠 사용해 수익도 나눠 갖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코드셰어가 좌석 품귀 현상으로 이어져 항공권 가격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항공기 한 대당 평균 250~300좌석이 있는데 이 중 약 100석을 버진애틀랜틱에서 판매하면 남은 좌석에 대한 예약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버진애틀랜틱이 아시아나항공의 히스로공항 슬롯을 가져가긴 했지만 아직 인천공항 운수권을 갖고 있지 않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버진애틀랜틱은 대한항공이 취항하는 다른 국가 노선까지 코드셰어를 원하고 있다.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송민섭 지부장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조은비 기자 

◇ 슬롯 반납 늘면 항공업계 경쟁력 약화 

노조는 “양 사 합병으로 야기될 독과점에 대해 대한항공이 무리하게 슬롯을 반납하고 있다”며 “영국경쟁당국, 중국경쟁당국이 제시한 슬롯 반납 조건을 승인하면서 심층 심사에 들어간 EU, 미국, 일본에서도 무리한 조건을 요구하면 슬롯을 반납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국내 항공업계 경쟁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제시되는 부분이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토부는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이 독과점을 우려해 양사가 보유한 노선 점유율이 50%를 넘으면 반납하도록 했다. 현재 국내 LCC 업계가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을 취항할 만한 재무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외항사로 슬롯을 반납할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송민섭 지부장은 “슬롯 반납 기준을 넘어서다 못해 뺏기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슬롯이 많이 남았던 적이 있었다”며 “외항사에 슬롯을 넘긴 미국도 다시 되찾아 왔는데,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예견된 구조조정?

노조는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 합병이 조종사, 승무원 등 중복 인원에 대한 구조조정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영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EU(유럽연합)에 슬롯을 반납하면 아시아나 항공편이 더욱 줄어 소리 없는 감원이 시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지부장은 “합병 초기부터 중복 인원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며 “당시 대한항공은 일반직 약 1000명만 중복 인원이라고 말했지만, 합병이 본격화되지 않은 현재 이전보다 비행기에 투입되는 승무원 수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시아나 슬롯을 반납하면서 유휴인력이 늘어난 것도 문제인데, 합병 이후 경쟁력이 떨어지는 노선을 줄이면 유휴인력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0년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이 기업 결합 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밝힌 것에 대해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대한항공 직원들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승무원 인원이 적어 본인 비상장비와 보안을  확인하지 못하고 이륙해 안전보안에 구멍이 났다”, “비상탈출 하는 문마다 승무원 한 명씩 배치되어 있지 않다”와 같은 비판 글을 올렸다. 

코로나로 닫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거의 모든 서비스가 복원됐지만, 승무원 인력 부족으로 항공사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편 대한항공 관계자는 “지난 2020년에 밝힌 것처럼 기업 결합 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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