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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 가치' 노선, 외항사로…대한항공 합병 드라이브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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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산업

    '수천억 가치' 노선, 외항사로…대한항공 합병 드라이브 괜찮나

    핵심요약

    英 합병승인 받으며 대한항공·아시아나, 런던 히스로공항 슬롯 최대 7개 반납키로
    국내 LCC "장거리 취항 의지·준비 역량 있다"지만 고려 안 되고 외항사가 어부지리
    "정책적 지원 부재시 항공산업 경쟁력 약화 가능성" 우려가 현실로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세워진 대한항공 항공기 모습들. 연합뉴스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세워진 대한항공 항공기 모습들. 연합뉴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 합병에 필요한 국내외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슬롯(특정 시간대 이착륙할 수 있는 권리)을 속속 반납하고 있다. 합병에는 속도가 나고 있지만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이 저하되고 고객 서비스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우려는 합병 초기부터 나온 지적이어서 정부 당국이 합병 자체에만 몰두하며 예정된 후폭풍을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경쟁당국 합병승인 위해 슬롯 속속 반납…반납 슬롯은 외항사로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최근 대한항공이 가진 인천~런던 노선 슬롯 중 최대 주7개 슬롯을 영국 항공사인 버진애틀랜틱에 주는 조건으로 아시아나와의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앞서 합병을 승인한 중국 경쟁당국도 지난해 12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슬롯 9개를 내놓겠다고 하자 두 회사의 결합을 승인했다. 양국의 전례를 감안하면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남은 해외 경쟁당국들도 슬롯 반납 등을 조건으로 합병에 승인할 가능성이 크다.

    슬롯 반납은 거대 항공사가 결합하면서 시장 점유율이 올라감에 따른 독과점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와 해외 경쟁당국 모두 두 항공사 합병에 따른 독점을 막기 위해 슬롯 반납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두 항공사가 합병 이후 바로 슬롯을 반납하는 것은 아니고, 합병 이후 해당 노선에 진입하려는 항공사가 있으면 당초 약속했던 슬롯을 넘겨주는 형태다. 반납을 약속한 슬롯에 해당 항공사가 진입하지 않거나 그보다 적게 항공기를 띄우면 그만큼만 슬롯을 내어주면 된다.

    문제는 반납한 슬롯 중 상당수가 외항사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슬롯은 금전적인 가치가 있는 항공사의 자산으로 분류된다. 대한항공이 영국 버진애틀랜틱에 넘기기로 한 히스로공항 슬롯은 오만항공이 에어프랑스에 7500만달러(우리돈 약 977억원)를 주고 산 전례가 있다. 이를 감안하면 대한항공이 약속했던 7개 슬롯을 모두 버진애틀랜틱에 넘길 경우 수천억원의 가치가 있는 자산이 외항사로 이전되는 것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관련 EU 추가 심사 돌입. 연합뉴스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관련 EU 추가 심사 돌입. 연합뉴스
    두 항공사의 합병을 심사중인 EU지역에서도 파리와 프랑크푸르트, 로마, 라브셀로나 등 4개 노선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시장 점유율이 60%(2019년 기준)을 넘고, 미국 지역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LA, 시애틀 등 대부분 미주 노선이 중복되어 있는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제외한 국내 항공사들의 여건을 감안하면 반납될 슬롯 중 상당수가 외항사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국내 LCC, 장거리 취항 의지 있는데"…정책적 지원 부재 속 경쟁력 약화


    항공업계에선 슬롯 반납을 전제한 두 항공사 합병이 국내 항공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에어프레미아 등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대형기를 도입하고 장거리 노선을 취항하고 있고, 다른 LCC들도 대형기를 도입할 의사가 있는데 이들 대신 외항사가 대체항공사로 선정되고 있어서다. 항공업계에서는 정책적 지원이 있다면 국내 LCC도 10년 이내 대형기 10여대를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내 LCC들도 향후 투자 등을 통해서 장거리 노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 자체만 밀어붙이다보니 이런 부분이 세세하게 고려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특히 합병을 위한 슬롯 반납과 그에 따른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를 포함해 여러 경로로 지적됐지만, 정책적 지원은 이뤄지지 못해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라는 질책도 나온다.

    국토교통부의 원희룡 장관. 윤창원 기자국토교통부의 원희룡 장관. 윤창원 기자
    주무주처인 국토교통부의 원희룡 장관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내 항공사의 대체능력을 보증 등의 역할을 할)'항공산업발전조합'을 설립을 위해 기재부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말했지만 국토부와 기재부 간 이견으로 국감이후 반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설립의 밑 작업인 시행령 개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원 장관은 "국적사가 경쟁노선에 취항할 있도록 모집하고 권유하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안 채워지는 곳이 2~3곳 정도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국부 유출을) 최소화하겠다"고 답했지만 결과적으로 두 항공사가 반납한 슬롯은 외항사들이 채울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산업은행도 강석훈 회장이 미국과 유럽을 연이어 방문해 해당 국가의 기업결합 승인을 위한 외교적 차원의 지원을 요청하는 등 합병 속도내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모양새다.

    대한항공도 대체항공사로 외항사가 아닌 국내 항공사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기업결합 심사 당시 장거리 기재가 충분하지 않았던 국내 LCC를 대체항공사로 제시할 경우 외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담보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영국의 경우 버진애틀랜틱이 운항 노선을 포기하거나 최소 기간 운항을 하지 않을 경우 국내 LCC를 포함한 모든 항공사에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슬롯을 반납해야 합병 승인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로서도 답답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항공대학교 경영학부 윤문길 교수는 '항공산업 생태계 변화 전망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미국 등 장거리 지역에 대해 국적 장거리 항공사의 육성 및 지원 제도를 통해 경쟁노선 취항 지원 및 신규노선 취항 확대 지원이 필요하다"며 "신규 진입항공사에 대해 통합항공사의 제휴협력 및 마일리지 프로그램 공유 등 자원공유를 유도해 실질적인 경쟁항공사로서 조기에 시장 정착이 가능할 수 있는 지원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합병후엔 마일리지 등 고객 편익 늘릴까


    황진환 기자 황진환 기자 
    한편 두 항공사의 합병이후 소비자들의 편익이 저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소비자들의 반발에는 꿈쩍도 하지 않다가 정부·정치권의 압박에 못 이겨 대한항공이 한 발 물러선 이른바 '마일리지 개편안 사태'가 또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국토부를 통해 확인한 자료를 보면 2018년 말 국토부와 대한항공, 아시아나가 '마일리지로 구매 가능한 보너스 좌석수(마일리지 항공권)를 5% 이상 배정'하기로 협의했는데, 다음해인 2019년 대한항공은 전체 항공권 중 8.2%, 아시아나 항공은 5.7%를 마일리지 항공권에 배정하는데 그쳤다. 이는 국토부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공시자료를 통해 모니터링 한 결과다.

    국회의 마일리지 운영현황 관련 자료 요청에 대한항공은 "영업비밀", 아시아나는 "해당 자료(마일리지 항공권 배정 비율)가 공개되면 그 손해가 항공사를 이용하는 소비자들과 국가 경제에까지 미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한 상태다.

    두 항공사의 합병 이후 통합 항공사의 마일리지 정책은 공정위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공정위 승인 이후 통합 항공사가 논란이 됐던 마일리지 개편안 방향으로 약관을 다시 변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상혁 의원은 "대형 항공사 통합과정에서 소비자 편익 저하와 국내 항공경쟁력 약화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는데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문제 개입과 대책마련에 소극적인 모습"이라며 "국내 LCC 장거리노선 운행 역량을 키우고 가격관리시스템을 확실하게 마련해 소비자 편익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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